
얼마 전 드라마 '또 오해영'을 정주행했다.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는 평범한 오해영과 박도경의 사랑 이야기가 재미있었고, 예쁜 오해영과 평범한 오해영 사이의 묘한 관계가 흥미로웠다.
그런데 심리상담사의 관점에서 다시 보니 조금 다른 것이 보였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예쁜 여자와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과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후반부에 예쁜 오해영이 어린 시절의 평범한 오해영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오해영이 엄마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쁜 오해영의 마음에는 묘한 감정이 스친다.
기억하기로는 그 장면에서 "사랑받는 애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취지의 대사가 나온다.
정확한 문구를 떠나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장면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순간, 예쁜 오해영은 처음으로 깨닫기 때문이다.
자신이 평생 부러워했던 아이가 사실은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아이가 아니라는 것.
예쁜 오해영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예쁜 오해영은 글자 그대로 예쁘다.
공부도 잘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는다.
반면 평범한 오해영은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학교에서는 '예쁜 오해영' 옆에 서 있는 아이였고,
직장에서도 특별히 주목받지 못했고, 결혼을 앞두고는 파혼까지 당한다.
세상은 두 사람을 비교한다.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잘났는지,
누가 더 좋은 남자를 만나는지.
그래서 평범한 오해영도 자신이 예쁜 오해영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시청자 역시 처음에는 예쁜 오해영이 훨씬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 구도가 조금씩 뒤집힌다.
예쁜 오해영 역시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녀는 너무 일찍부터 '예쁜 아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보고, 능력을 보고, 미소를 본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외로움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사랑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경험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녀의 엄마는 자식에게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의 삶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섯 번씩이나 재혼을 하면서도 여전히 부적응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쁜 오해영은 진짜 부러움을 느낀다
어린 시절의 평범한 오해영이 엄마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
그 장면에서 예쁜 오해영이 바라본 것은 친구 오해영의 외모도 아니고,
성적도 아니고 미래의 성공도 아니었다.
그녀가 본 것은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였다.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장면.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평생 갖고 싶었던 장면일 수 있다.
나는 이 장면이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오해영은 평생 예쁜 오해영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예쁜 오해영 역시 평범한 오해영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받았다는 기억이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의 비교는 이렇게 바뀐다.
"누가 더 예쁜가?"에서 "누가 더 사랑받았는가?"로.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는 걸까?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말을 하는 내담자들을 만난다.
"저 사람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더라고요."
"저는 작은 일에도 너무 크게 흔들리는데 저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똑같이 힘든 일을 겪었는데 왜 저는 이렇게 힘들까요?"
물론 사람의 회복력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성격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고 삶의 경험도 다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힘들 때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안전기지가 있는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경험해도 마음속 어딘가에 이런 감각이 남아 있게 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실수해도 나는 버려지지 않는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
이런 경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큰 힘이 된다.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거절당하거나 비교당하거나 무시당했던 사람은
작은 실패에도 자신의 존재 전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내가 일을 못했구나." 가 아니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 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다.
사랑받은 경험은 자존감의 뿌리가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실패하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에 가깝다.
왜냐하면 실패한 '나'와 가치 없는 '나'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다.
연인에게 거절당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이 곧바로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마음의 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경험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네가 잘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실수해도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너는 소중해."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세상을 조금 더 안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전감은 성인이 된 후에도 마음속에 남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이별을 경험하고 실패를 경험하고 배신을 경험한다.
다만 상처를 입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보다 "이번 일로 많이 힘들구나." 라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아무도 필요 없어." 라고 관계를 끊어버리기보다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을 공격하기보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랑받은 사람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말의 심리적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받은 사람은 삶이 늘 순탄해서 강한 것이 아니다.
힘든 순간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
이 드라마가 더 아픈 이유는 예쁜 오해영 역시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름답고 능력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그래서 그녀는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 한다.
괜찮은 척하고 웃고 상처받지 않은 척한다.
어쩌면 '예쁜 오해영'이라는 모습은 그녀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 않아.'
'나는 사랑받고 있어.'
그렇게 보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그녀를 좋아해도,
그녀의 마음속 어린아이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면 그 사랑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때때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면서도 외로울 수 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오해영'들
상담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직장도 있고 가족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계속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왜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들까?"
"왜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까?"
그럴 때 상담에서는 현재의 문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살아온 관계를 살펴본다.
어린 시절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실수했을 때 어떤 반응을 경험했는지.
울었을 때 누가 안아주었는지.
잘했을 때만 사랑받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랑받았는지.
그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또 오해영'을 처음 볼 때 우리는 평범한 오해영이 예쁜 오해영을 부러워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평범한 오해영이 부러워했던 것은 예쁜 외모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예쁜 오해영이 가진 것은 외모와 능력처럼 보였지만,
그녀가 진짜로 부러워했던 것은 어쩌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반대로 예쁜 오해영이 어린 오해영을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것은
엄마와 팔짱을 끼고 걸어갈 수 있었던 그 평범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서로를 부러워하며 살아왔다.
한 사람은 외모를,
한 사람은 사랑을.
하지만 결국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외모도, 능력도, 사회적 성공도 아닌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라고 느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힘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졌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괜찮아. 그래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이번에 실패했다고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누군가 나를 떠났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아마 이것이 사랑받은 경험이 사람에게 주는 가장 큰 힘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은 힘든 순간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음의 바닥이 된다.
그래서 결국 '또 오해영'은 예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는
'나도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예쁜 오해영처럼 되는 것도, 누군가보다 더 잘사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저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와 팔짱을 끼고 걸었던 그 장면처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것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어린 시절 그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면,
늦었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
어쩌면 상담의 시작도 그 말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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